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(문단 편집) == 저서 == || '''{{{#white 제목}}}''' || '''{{{#white 집필 연도}}}''' || '''{{{#white 발간 연도}}}''' || || 《[[군주론]]》 [br] ''II Principe'' || [[1513년]] || [[1532년]][* 사후에 출간] || || 《로마사 논고》 [* 원제목은 《리비우스 로마사 첫 10권에 대한 강의》이다. 이것이 일본에 번역되면서 "로마사 논고"로 이름지어 졌다.] [br] ''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'' || [[1518년]] || [[1531년]][* 사후에 출간] || || 《만드라골라》 [br] ''Mandragola'' || [[1518년]] || [[1526년]] || || 《전술론》 [br] ''Libro della arte della guerra'' || [[1520년]] || [[1521년]] || || 《피렌체사》 [br] ''Istorie fiorentine'' || [[1525년]] || [[1532년]][* 사후에 출간] || 저서로는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참고하여 작성한 공화정 논고인 《[[로마]]사 논고》[* 한길사 판은 로마사 논고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있다. 반면 동서문화사 판은 일본의 한 출판사의 번역명을 따라해서 '정략론'이라는 이름으로 군주론과 합본으로 발간되어 있다.], 《전술론》[* 제목대로 당시의 군사전술과 군대 운용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. 사실 마키이벨리의 지식은 주로 역사, 정치 등에 집중되었고, 그 연장선상에서 군사 부문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지만, 실전적 측면의 이해는 부족했다. 때문에 이 책은 로마사 논고와 군주론 등 그의 다른 저서들보다는 평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. 그래도 이 책의 서문에 나오는 "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들이야말로 평화의 소중함을 가장 잘 아는 이들"이라는 문장은 종종 인용되는 편이다. 그러나 사실 이 말은 마키아벨리 본인의 사상을 담은 건 아니며 다른 군사전문가 1명이 마키아벨리와 다른 손님들에게 군대의 운용과 전술에 대해 설명하며 대화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.], 《피렌체사》 등의 역사서와 《군주론》으로 대표되는 정치서적, 그리고 희곡 《만드라골라》 등이 있다. 그가 살아 있을 때는 《만드라골라》가 큰 인기를 모아 마키아벨리의 가계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그를 정치저술가 보다는 희곡작가로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. 이후 죽고 나서는 군주정에 대한 마키아벨리 자신의 정치론을 당시까지의 유럽 역사를 인용하여 증명한 《'''[[군주론]]'''》이 출판되어 유명해졌고 이는 곧 마키아벨리를 대표하게 되었다.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그는 이후 수백년 동안 '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활한 자'의 아이콘으로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게 된다. 반면, 학계에서는 그의 저서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근대 공화주의 이론의 체계를 성립한 《로마사 논고》를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. 《군주론》은 마키아벨리가 그 당시 메디치 가문에게 등용되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, ㅡ 마키아벨리 자신의 진짜 의견은 최대한 자제하고 ㅡ 군주정에 치우쳐서 얘기를 한 면이 있으며, 그의 진실된 생각은 공화정을 주장한 《로마사 논고》에 있다는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